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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폭탄의 시조는 아인슈타인 아니었다

남동공단 공장 임대 매매 2020. 4. 15. 03:01





원자 폭탄의 시조는 아인슈타인 아니었다


1939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프랭크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원자 폭탄 개발을 촉구하는 서한은 아인슈타인이 쓴 것이 아니라 콜럼비아 대학의 물리학자 레오 질라드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핵 시대의 첫장을 연 유명한 서류였다.


1939년에 질라드와 프린스턴의 과학자 유진 위그너는 아인슈타인에게 아주 중대한 요청을 하였다. 아인슈타인의 명성에 힘입어, 핵에너지를 이용한 전쟁 용품에 대한 연구와 원자폭탄을 구상하고 제조하는데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빌려쓰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인슈타인은 핵의 연쇄 반응에 대해 연구에 그리 관심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8월 2일 질라드는 아주 큰 우라늄 덩어리 안에서 폭발된 핵의 연쇄 반응에 의하여 방출된 막강한 힘과, 이와 더불어 생겨난 수많은 라듐 같은 입자들에 관한 설계안을 작성하여 아인슈타인이 서명하도록 제시하였다.


그 내용은 드디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달되었고, 아인슈타인이 첫번째 설계안과 후속안에 서명함으로써 원자 폭탄을 개발하게 한 '맨해튼 계획' 이 1942년에 실현을 보게 되었다.


질라드가 그 계획을 수립하게 한 장본이었다면, 결국 아인슈타인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셈이었다. 후일 아인슈타인은 "나는 그저 우체통 노릇을 했을 뿐이다. 그들은 완성된 편지를 내게 가져왔고, 나는 그저 그 편지를 부쳤을 뿐이다" 라고 쓰고 있다.


그렇지만 질라드는 그 원자 폭탄이 1945년에 일본 국민의 머리 위로 떨어지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였다. 미국은 원자 폭탄의 막강한 파괴력을 과시만 하고 인명 살상이 있기 전에 일본이 항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미국 정부가 실제로 그 폭탄을 사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되었을 때 질라드는 항의 서한과 전보를 보냈다. 미국 정부에 의한 원자 폭탄 사용을 저지시키는 데 실패하자 그는 물리학계를 떠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여행을 평화 운동과 핵무기 사용 자제를 위해서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