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 2/마르고

저격수를 불어들이는 불길한 사나이

남동공단 공장 임대 매매 2020. 4. 13. 13:43





저격수를 불어들이는 불길한 사나이


아브라함 링컨의 장남인 로버트 타드 링컨은 3명의 역대 미국 대통령이 자객에 의해 총에 맞아 죽은 현장에 가까이 있었던 인물로서 기억되는 비운의 사나이였다.


세 번째의 저격 사건이 있은 후 그는 그 다음 최고 행정 집행인의 자리에 오를 사람과의 접촉을 조심스럽게 회피하였다. 그는 "내가 있는 자리에는 대통령의 임무 수행을 방해하는 어떤 재난이 따라다니는 것 같다"라고 말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백악관 재직시 그는 하버드에 떨어졌는데, 남북 전쟁이 끝나갈 무렵의 몇 개월 동안 그랜트 장군의 참모로서 대장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남부군 총지휘관 리 장군이 애포매탁스에서 항복하는 것을 목격한 후, 로버트는 1865년 4월 14일 워싱턴에 도착하였다. 그날은 바로 그의 아버지의 생애 마지막 날이었다. 로버트는 아버지의 곁으로 달려가 그 다음날 아침 운명하기까지를 지켜보았다. 장례식이 끝난 뒤, 로버트는 어머니와 함께 시카고로 이주하였다.


그는 법학을 전공하였고 변호사로서 명성을 날렸으나, 아주 내성적이며 자신의 개인 생활에 대해서는 어떤 침해도 거부하였다. 아버지와 아들간의 유사한 면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고, 사람들은 "로버트가 그의 어머니를 닮아 자존심이 강하고 지나치게 섬약하였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로버트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링컨이라는 이름이 항상 정치적 관심을 쏠리게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정치는 영광된 것이 아니라 희생일 뿐이었다. 1881년에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이 그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하였을 때 그는 내키지 않는 의무감으로 그 자리를 수락하였다.


그해의 어느 더운 7월 아침, 로버트는 워싱턴의 한 기차역에 당도하였는데, 그때 가필드 대통령이 저격을 당하였다. 창백하고 기진맥진해 보이는 가필드 대통령은 로버트의 손을 잡고 잠시 회생의 빛을 보였지만 3개월도 못 되어 그만 타계하고 말았다.


1897년 로버트는 풀만 회사의 사장으로 백만장자가 되어 있었다. 위대한 해방가의 아들이 이제는 돈 많은 사업가가 된 것이다. 1901년 9월, 로버트는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을 만나기 위하여 가족들과 함께 뉴욕의 버팔로로 갔다. 버팔로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가족들은 대통령이 저격 당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로버트는 그로부터 1주일 후에 죽은 매킨리 대통령을 한차례 상면할 수 있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 4명이 암살 당하였고, 로버트타드 링컨은 그 중 3명이 암살 당할 때에 가까이 있었다. 네 번째로 암살 당한 대통령은 존 F. 케네디로서, 로버트 링컨이 1926년에 죽었을 때 케네디는 9세였다. 케네디는 지금 알링턴 국립묘지 안에 로버트 타드 링컨의 묘지로부터 불과 91m 떨어진 곳에 안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