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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운하를 건설케 한 우표

남동공단 공장 임대 매매 2020. 4. 12. 13:11





파나마 운하를 건설케 한 우표


현재의 파나마 운하가 있는 지점이 정해지게 된 것은 아마도 프랑스의 건설 기술자였던 필립 장 부노바리야라는 한 집념의 사나이가 미국 국회로 보낸 니카라과 우표 한 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 국회는 애초에 이 지역 운하를 니카라과에 건설하려고 했었는데, 부노바리야는 프랑스-파나마 운하 건설 계획을 추진하다가 1889년에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운하건설 권리를 미국에 팔 수 없을까 고심하였다. 수염을 기르고 우쭐대는 듯한 이 조그만 사나이를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은 '결투자의 외관'을 가진 사나이라고 말했다.


그때 당시 미국은 한시라도 빨리 북남미 대륙을 가로 지르는 운하를 파는 것이 급선무였다. 왜냐하면 전함 '오래곤'호가 스페인-미국 전쟁터로 긴급히 보내져야 되었는데,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남미를 돌아서 카리즈해 까지 도달하는 데 장장 68일이라는 향해 기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의회내에서는 1899년경까지도 이 운하 건설에 대한 결정을 보류하고 있었다. 그것도 파나마가 아니라 니카라과에 건설하는 계획안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부노바리야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천재 지변이 일어났다. 1902년 5월 8일 마르티크섬의 펠레산이 폭발하여 3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약 1개월 후 니카라과의 모모톰보가 또 폭발하였다. 그런데 이런 불행한 일들이 부노바리야에게는 행운을 가져왔다. 그는 화산 연기를 내뿜는 모모톰보의 모습이 담긴 1900년도 니카라과 우표 600장을 찾아내어 미국 의회에 보냈다. 의미 있는 질문을 슬쩍 던진 것이었다. 화산이 없는 파나마 같은 곳에 운하를 건설하면 안전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1904년 미국 의회에서는 파나마를 운하 건설지로 선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