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 2/마르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

남동공단 공장 임대 매매 2020. 6. 7. 19:58

당시 동독 공산당(사회주의통일당) 정치국원이자 정부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Gunter Schabowski)는 동베를린의 국제프레스센터에서 전국에 TV로 중계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이날 오전의 각료회의 결정사항을 읽어 내려갔다.
사흘 전에 발표된 ‘여행완화법안’에 출국비자(exit visa)를 발급하는 새로운 기관을 설립한다는 조항이 반발을 야기하자 정부가 이를 무마하기 위해 포고령발표 형태로 출국비자 발급에 별다른 제한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려던 자리였다.

샤보브스키 대변인은 독일어로 “오늘 우리는 모든 동독 주민이 (동서독의) 어느 국경검문소에서도 출국을 허용하는 규정을 시행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의 발단은 그 다음에 이어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시작됐다.
몇몇 기자들이 “그럼 언제부터 시행하느냐” ,“서베를린에도 적용되느냐”, “여권 없이도 여행이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휴가를 다녀온 직후라서 각료회의에 참석하지 못해 당초 이 조치가 당의 승인을 거쳐 다음날(10일)부터 시행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샤보브스키는 잠시 머뭇거리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자신 없는 태도로 ‘내가 아는 한 즉시’(to my knowledge, immediately, without delay)라고 답변했다.
세기의 ‘말실수’였다.
샤보브스키는 또 여행완화조치가 서독과 서베를린으로의 여행 모두에 적용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그렇다”고 말했다.

회견장의 기자들은 별로 동요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여행완화조치라고 하지만 획기적인 새로운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국허용 지점을 전 국경검문소로 확대한다는 점, 여권 발급기간의 단축, 그리고 앞으로는 여행 동기나 친인척 관계 같은 조건을 경찰당국에 제시하지 않아도 외국여행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정도가 새로 포함됐다.

이런 조치는 그동안의 제한적인 여행조치에 조금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었고, 국경개방이나 장벽 제거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회견장의 동독기자들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고 서독기자들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ANSA통신의 Riccardo Ehrman특파원은 기자회견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마의 ANSA 본사로 전화를 걸었다.
기사제목을 “The Berlin Wall has collapsed.”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로 하여 ‘flash news’(긴급 뉴스)로 처리해줄 것을 부탁했다.

세계의 뉴스통신사들은 통상 긴급뉴스를 내보낼 때는 flash나 bulletin, urgent, breaking, alert 등의 단어를 제목 앞에 붙인다. ANSA 외신부장은 처음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기사화를 거부했다.

외신부장은 심지어 에르만에게 “You lost your mind”(당신 정신 나간 사람 아니냐)라며 미친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그러나 “현장의 기자를 믿어 달라”는 에르만의 간청에 외신부장은 굴복했고 뉴스는 타전됐다. 세계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다른 서방 뉴스통신사들 보다 최소한 31분이 앞선 ‘세기의 특종’이었다. 그러나 이 뉴스는 샤보브스키의 말을 오해한 ‘오역’(misinterpretation)이자 ‘오보’(incorrect report)였다.

이날 기자회견은 자유로운 국경개방이나 베를린장벽 붕괴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동독정부나 샤보브스키 어느 누구도 국경개방을 염두에 두고 한 기자회견이 아니었다.
동독 공산당은 베를린 장벽을 개방할 계획이 전혀 없었고, 전 세계의 그 누구도 그날 베를린 장벽이 붕괴할지 예측하지 못했다.

서독 정부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동독이 베를린장벽을 개방한다면 이는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동독의 일방적인 조치로만 될 일이 아니었다. 사전에 서독과 방법이나 절차 등을 협의해야하고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 등 베를린을 분할관리하고 있는 2차세계대전 연합세력인 승전국가들에게도 통보해야할 성질의 것이었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그날 폴란드를 방문 중이었다.

에르만 특파원 자신도 훗날 한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여행완화조치는 당시 동독에서 여행의 자유, 집회, 언론표현의 자유 억압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라이프치히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항의시위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주민을 달래기위한 선전차원의 조치였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하지만 “eased travel restrictions” (여행제한조치를 완화했다)는 샤보브스키의 말은 기자들에 의해 “The border was opened”(국경이 개방됐다)를 거쳐 “The Berlin Wall has collapsed” (베를린장벽이 붕괴됐다)로 발전된 것이다.
이는 샤보브스키의 말을 확대해석한 것도, 의역한 것도 아니며 오역,오보 그 자체였다.

이날 서독 TV들도 기자회견에 특기할만한 주요내용이 없다고 보고 ‘스파트 뉴스’를 내보내지 않았다. 차분히 저녁 8시뉴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리가 났다.

ANSA통신이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고 타전한 후 이를 짜깁기한 로이터, AP, AFP, 교도 등 주요 서방 뉴스통신사들의 뉴스가 앞 다투며 헤드라인에 ‘긴급’을 달고 일제히 입전되기 시작 한 것이다.

세계 언론계는 당시 유력 뉴스 통신사로 거의 모든 세계 각국에 특파원 또는 통신원을 두고 있던 AP, 로이터, AFP, UPI 등 4대 국제 뉴스통신사를 비롯
타스(현 이타르타스), 교도(일본), 신화(중국), DPA(독일), PTI(인도) 중 어느 한 곳도 샤보브스키의 기자회견을 즉각 주요 뉴스로 다루지 않고 있다가 ANSA의 뒷북을 쳤는지에 대해 의아해 하고있다.

공영방송 ARD를 비롯한 서독 TV들은 부랴부랴 방향을 틀어 “동독, 국경을 개방하다”쪽으로 보도했다. 자기들이 준비해 놓은 기자회견 내용 말미에 국경을 개방했다는 한마디를 첨가한 것이었다. 다른 언론사들도 이 근거 없는 보도 경쟁에 끼어들어 국경이 개방되었다는 식의 ‘오보’를 날렸다,

처음부터 여행완화조치 기자회견내용을 TV로 지켜보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동독주민들은 오후 8시가 지나 서독TV를 보면서부터 흥분하기 시작했다. 동독 주민 들은 자동차에 올라 또는 걸어서 국경선으로 향했다. 일시에 수천명이 몰렸다.
하지만 동독 경비대원들은 국경을 열라는 상부 지시를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통행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그러나 물밀듯이 몰려오는 사람들의 위세에 눌려 한 장교가 마침내 문을 열어 주었다.
그 시각이 밤 10시 45분이었다.
삽시간에 모든 경비초소의 문이 올라갔고 총 한발, 피한방울 없이 그렇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세계사는 바뀌었다.

28년 동안 동서냉전의 상징이었고 자유를 찾아 나선 239명이 목숨을 잃었던 155㎞의 베를린장벽은 이렇게 해서 붕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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