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 2/마르고

유럽의 지배자 합스부르크가의 비극

남동공단 공장 임대 매매 2020. 6. 4. 17:23

유럽의 지배자 합스부르크가의 비극


현재도 유럽의 곳곳엔 이 가문의 영향력이 알게 모르게 스미어 있고 유서깊은 귀족 가문으로 그 혈통들이 퍼져 있습니다
그 유명한 마리 앙트와네트를 낳은 가문.
바로 합스부르크 가문입니다

합스부르크가를 빼고 유럽의 왕실사와 중세를 이야기할수 없습니다.
유럽 최대의 왕실 가문이었고
오스트리아를 600여년 지배했던 이 가문의 핏줄은 전 유럽에 실핏줄처럼 뻗어 있지요.

이 가문의 이름인 -합스부르크는
슈바벵지방에 세워진 합스부르크성-매의성-
-하비하츠부르크성-에서 유래된 것으로
점차 영향력이 커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선출에도 개입하게 됩니다.

최초의 합스부르크 왕은 독일왕 루돌프 1세로
그는두 아들 알프레히트와 루돌프에게 오스트리아와 슈타이마르크를 상속.
이후 오스트리아는 수백년을 이 가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답니다.

유명한 마리 테레지아여왕은
이 가문의 마지막 계승자랍니다.
로트링겐 로렌의 공작인 프란츠 스테판과결혼하여
합스부르크 로트링겐왕가로바뀌어
정통 합스부르크 왕가는 단절되지요.
여기에는 어쩔수 없는 시대의 사류-유럽의 시민혁명-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습니다.

1804년 합스부르크 로트링겐왕가의 프란츠 2세는 자신을 오스트리아의 황제로 칭했으나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후
이 왕가는 그 길고 긴 시간의 문을 닫게 됩니다.

16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합스부르크의 공주들은 특히 프랑스 왕가에 시집을 많이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기의 프랑스는 유일하게 합스부르크 출신의 왕이 나오지않은 때였으니까요.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정략 결혼으로 공주들을 보냈고 유명한 루이 14세의 정비도 합스부르크의 피를 이은 에스파냐의 마리아테레사였습니다.
그리고 비극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명의 공주와 부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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