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와 두 영웅,
강함을 누르는 부드러움의 미학
BC 69년에 태어난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상 어느 여인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녀의 생애와 러브스토리는 지금껏 많은 서양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그녀는 파라오 율법에 따라 남동생들과 두 번씩이나 결혼해 왕좌에 올랐고, 왕권을 쟁취하기 위해 남편이자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치열한 권력 투쟁을 벌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로마인 정복자인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차례로 유혹한 과정이다. 두 영웅을 어떻게 그처럼 완벽하게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기원 전 48년, 클레오파트라는 남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후 강제로 폐위되어 유배된 상태였다. 벼랑끝에 처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를 침공한 카이사르의 힘을 빌려 왕권을 되찾고자 했다. 그녀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카이사르를 유혹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한 카이사르가 이집트 왕궁에 묵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몰래 그에게 접근하기가 불가능하자 그녀는 대담한 방법을 썼다. 스스로 양탄자 위에 드러누운 뒤 충복에게 자신의 몸을 양탄자로 둘둘 말도록 했다. 충복은 어깨에 맨 양탄자를 호위 병사들에게 보인 후 집정관에게 줄 값진 선물을 가져왔다고 둘러댔다. 큼직한 양탄자는 카이사르의 눈길을 끌었고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양탄자를 풀게 했다.
이게 웬일인가. 양탄자를 펼치자 눈부시게 아름다운 반라의 비너스가 솟아오르다니... 한 눈에 반한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의 연인이 되었다. 여왕은 카이사르의 권력을 이용해 왕권을 되찾고 한 맺힌 복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를 편안하게 놔두지 않았다. 카이사르의 아들 카이사리온까지 낳은 클레오파트라에게 절망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기원전 44년 3월15일, 카이사르의 무한 권력에 위협을 느낀 로마의 정적들이 그를 암살하였다.
클레오파트라는 다음 상대로 로마 최고의 실력자로 부상한 안토니우스를 점 찍었다. 삼두 정치인 중 한 사람인 안토니우스가 로마 제국의 동부지역 사령관에 오른 후 동방 원정길에 나섰다는 정보를 입수한 클레오파트라는 자신과 국가의 운명을 걸고 또 한번 유혹의 길에 나섰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첫 대면한 장소는 타르수스다. 지금은 터키의 한 지방 도시에 불과하지만 고대의 타르수스는 소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였다. 시가지는 강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클레오파트라는 온갖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와 안토니우스에게 다가갔다.
선체는 황금빛이요 돛은 자주색이었으며, 갑판 중앙에는 금실로 수놓은 장막이 좌우로 열려 있고, 그 아래 옥좌에 사랑의 여신 비너스로 분장한 클레오파트라가 앉아 있다. 노예들은 은으로 만든 노를 저으며 피리와 하프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고 배에서는 미혹의 향기가 풍겨나왔다. 클레오파트라가 입은 옷은 속살이 다 비치는 잠자리 날개옷이다.
안토니우스는 그만 이국의 여왕에게 혼을 뺏기고 말았다. 그는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벌떡 일어서서 클레오파트라를 바라본다. 클레오파트라는 금으로 장식된 장막 안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앉아 요염한 눈초리로 안토니우스를 탐색한다.
안토니우스를 유혹한 이후 클레오파트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행여 안토니우스가 권태를 느낄 새라 늘 새로운 쾌락을 선보였고, 날마다 산해진미에 악사와 무희를 동원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런 생활이 10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클레오파트라는 이 연인을 아예 남편으로 만들려고 했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려 안토니우스를 독차지하고 싶었다.
신분과 국적, 인종적인 차이는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안토니우스는 결혼 선물로 여왕에게 엄청난 이권이 걸린 오리엔트 지방의 통치권을 주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재물을 거머쥐었다.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아내 옥타비아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편지를 쓰고 또 다른 로마의 권력자인 옥타비아누스에게 제국의 지배권을 동서로 양분할 것을 요구했다. 로마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식민지에서 나오는 수입을 이집트 여인에게 몽땅 안겨주는 그에게 분노했다.
옥타비아누스는 여왕의 노예로 전락한 안토니우스를 '로마의 수치'라고 비난했다. 그는 두 남녀의 열애를 국가의 명예를 더럽힌 탕아와 국제적인 창녀의 야합으로 매도하며 그를 제거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31년에 벌어진 악티움 해전의 승자가 되었고, 패전한 안토니우스는 자결하였다.
유혹하는 악녀, '팜므 파탈'의 원형인 클레오파트라의 죽음도 갑작스럽고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안토니우스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온 그녀는 그날로 최후를 맞게 된다. 역사가들은 그녀가 독사에 물려 죽은 것으로 추정했다. 후대 화가들이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을 그릴 때는 독사가 벌거벗은 여왕의 젖가슴을 무는 자극적인 장면을 그리곤 했다. 시종이 그녀의 침실에 독사 여러 마리가 숨어 있는 무화과 바구니를 넣어 두었기 때문이다.
두 남자, 강력한 무력으로 세계를 호령한 카이자르와 안토니우스지만, 그들은 유연한 유혹의 무기를 지닌 '팜므 파탈' 앞에서 솜사탕처럼 녹아드는 포로가 되고 말았다. 철옹성을 무너뜨리는 힘과 칼로도 부드러운 한 여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였다.
계절도 그런 것 같다. 천지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 겨울 동장군이 지금 부드럽고 따뜻한 봄 처녀의 미소에 넋을 잃고 무장해제를 당한 채 물러나고 있다. '팜므 파탈'의 유혹 앞에 동장군 부류의 마쵸들은 견디지 못하나 보다. 봄은 '팜므 파탈'의 정령이 살아오는 계절이다.
'생활정보 2 > 닳도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소가 없어 해고된 사연 (0) | 2020.06.03 |
---|---|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0) | 2020.06.03 |
문왕과 강태공 (0) | 2020.06.03 |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술 마시는 방법 (0) | 2020.06.03 |
집중력을 기르자 (0) | 2020.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