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 2/마르고

이스터섬은 왜 멸망하게 되었을까

남동공단 공장 임대 매매 2020. 4. 11. 15:28





이스터섬은 왜 멸망하게 되었을까? 남태평양 한가운데,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이 하나 있다. 이 섬에 가장 가까운 육지는 폴리네시아의 피트케언섬, 무려 2,100km나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원주민들은 이 섬을 '큰 땅' 이라는 의미의 "라파누이", 또는 '세계의 배꼽(중심)' 이라는 의미로 "테피트오테레누아" 라고 부르지만, 외지인들의 유럽인들이 이섬을 "이스터섬" 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 섬의 이름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의 형상을 한 거대한 석상을 떠올립니다. 이곳에 정착한 사람을은 폴리네시아 계열의 원주민들입니다. 이들은 지원후 900년경에 카누를 타고 이 섬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호투 마투아'라는 이름의 전설적인 족장이 그 장본인이라고 전해지며, 그의 후손들은 12개의 씨족으로 나뉘어서 섬을 분할하고 공존했다고 합니다. 섬전체의 지형이 평탄하여 각 지역 간의 교류가 용이했고, 화산 덕분에 토양은 비옥했으며 섬 전체가 울청한 숲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바닷가에는 물새들이 가득했고 바다에 나가면 참치 같은 큰 생선과 돌고래를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습니다. 풍족한 환경에서 딱히 할 것도 없었던 섬사람들이 소일거리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사람 모양의 석상 '모아이' 라고 합니다. 모아이를 처음 본 유럽인들은 가난한 원주민들이 어떻게 거대한 석상을 만들고 운반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갖가지 시상천외하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남아메리카의 잉카인들이 이스터섬이으로 이주하여 문명을 건설했음이 틀림없다는 주장부터 이스터섭이 먼 옛날 태평양에 존재했던무(Mu) 대륙의 잔재라는 주장, 심지어는 외계신들의 이스터섬에와서 모아이를 만들었다는 엉뚱한 주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아이는 실제 이스터섬 주민들의 힘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현대 학자들이 실험해 본 결과 그렇게 많이 힘이 드는 것도 아니였다고 합니다. 제일 인원이 많이 필요한 공정은 제작이 끝난 석상이 분화구의 채석장에서 각 씨족의 영토인 해변까지 운반한 후 세우는 과정이다. 하지만 가장 큰 모아이도 500명 정도의 인원만 있으면 세울 수 있었고, 전성기 이스터섬의 인구는 10,000명 이상이 었으므로 노동력 조달에는 큰 문제가 없었어요. 오늘날에는 통나무 롤러,또는 썰매를 이용해서 옮겼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풍요로웠던 세월은 한없이 계속될 것 같았어요.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이스터섬에 멸망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섬을 덮고 있던 울창한 삼림이 주민들의 손에 의해 파괴되기 시작했었던 것이다. 삼림뿐 아니라 야생동물들도 감소하기 시작했어요. 환경 파괴의 1차 원인인 농경지 조성이었어요. 농사를 짓기위해 나무를 베어 농토를 만들었으며, 연료로 쓰기 위해서 나무를 베기도 했어요. 또, 모아이 제작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나무를 조달해야 했죠. 하필이면 이스터섬에 장례 관습은 화장(火葬)이었어요. 여기에도 대량의 나무가 필요했어요. 17세기에 들어서자마자 마침내 숲도 사라지고 모아이 제작도 끝났습니다. 이스터섬의 생존 환경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었어요. 서식 환경이 파괴된 데다가 대부분의 새가 섬을 떠나거나 멸종 했고, 배를 만드는 데 쓸 수 있던 큰 나무가 없어 더이상 바다에 나가 돌고래와 참치를 잡아올 수 없게 되었어요. 토양이 황폐화된 탓에 농사도 어려워지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폭발했고 전쟁과 폭력, 마침내 식인까지 만연하게 되었죠. 섬이 파괴되었을 때 떠날 수조차 없었던 이스트섬 주민들의 과거는 우리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류가 더 이상 삶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었을 때, 과연 우리는 어디로 떠날 수밖에 없는 극한에 몰린 이스터섬 사람들이 식인까지 일삼게 되었던 사실을 기억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