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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회의 탄생

남동공단 공장 임대 매매 2020. 6. 5. 20:58

영국 의회의 탄생

시몽 드 몽포르 이후 대자문 회의가
의회의 성격을 띠고 있었는데, 이것은 각 주의 대표나 각 도읍의 대표가 참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초기에는 이러한 대자문 회의의 개최조차 불가능했지만 의외로 1295년 국왕 스스로 대자문 회의를 소집하는 상황이 생겼다.

이를 '모범 의회'라고 하는데,
그것을 소집한 목적은 에드워드 1세가 주력하고 있던 경제 정책의 핵심인 조세 문제에 대해서 회의에 참석한 대표를 통해 지방 납세자들에게 미리 통보하면 징수가 쉬울 것이란 생각에서이다.

또한 이들 지방 대표들에게 이 의회에서 왕국의 정세까지 곁들여 설명함으로써 중앙 통치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에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모인 자문 회의는 얼마 후 참가의
주된 계급층인 중산층 대표들이 자기들만의 토의 관행을 만들면서 1297년에는 웨스트민스터 수도사 집회소에서 그들만의 만남이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진정한 의회의 모습이며 동시에 하원(Commons)의 탄생이었다.
결국 의회란 처음에는 왕권 강화를 위한 모임이었던 것이 국민을 위한 왕권 견제 기관으로 점차 그 모습을 바꾸어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