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문정동의 유래
-임경업이 태어난 마을-
문정동文井洞은 원래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의 일부였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가다가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물을 마시게 되었다. 물맛이 매우 좋자 인조는 마을에 많이 사는 문文씨의 성과 혼합하여 문정文井이라 하였다고 한다. 마을의 지형이 연꽃과 같다 하여 연화連花洞동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문정동은 개발 전에는 아늑한 농촌 마을로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였다. 수원水源이 좋았으므로 대부분 벼농사를 지었으며 밭작물로 참외, 수박, 오이 등을 재배하여 가까운 송파시장 등에서 판매하였다. 현재 문정동 훼미리아파트 앞의 정금원鄭金院은 관리들이 공무로 여행할 때 숙박하거나 말 등의 교통수단을 제공받는 곳이었다.
그동안 사라진 문정동의 자연 마을 중 두댐이는 임경업이 태어났다는 마을이다. 헛간머리는 1백 년 전에 석昔씨라는 노인이 길가에 집을 짓고 낮이면 집신, 낫, 담배 등 잡화를 팔고 밤이면 비워 두었다 하여 불리던 이름이다. 차차 헛간머리 주위에 주막 등이 들어서자 이 말이 와전되어 혜경머리로 되었다. 헛간머리의 현재 위치는 장지동 242번지 부근으로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는 교통의 요로였다. 개와집 마을에는 이씨가 많이 살았다.
임경업의 출생설이 전해지는 두댐이 마을에는 임경업의 아버지가 살았는데 몹시 가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그네가 찾아와 하룻밤 자고 가기를 간청하였으나 임경업의 아버지는 손님을 대접할 형편이 못 되어 몇 번이나 거절하였다. 그럼에도 나그네는 계속 간청하였고 임경업의 아버지는 마지못하여 허락하였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나그네가 몰래 잠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뒷산은로 향하자, 이상하게 여긴 임경업의 아버지는 뒤를 밟았다. 나그네는 뒷산의 한 지점에서 무엇인가를 묻은 다음 그 길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임경업의 아버지가 이튿날 그 자리을 파 보자 병아리 소리가 들리더니 닭이 나와 홰를 치며 울었다. 임경업의 아버지는 이 터를 명당으로 보고 임경업의 할아버지를 이곳으로 이장한 뒤 임경업이 태어났다고 한다.
지금 문정1동사무소 옆에는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느티나무는 1982년 10월 30일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는데 수령 568백 년에, 높이는 20미터, 나무 둘레는 4.7미터에 달한다.
문정동은 88서울올림픽 당시 선수 및 임원단의 숙소로 건립한 훼미리아파트가 올림픽 직후 일반인에게 분양됨으로써 문정 1.2동으로 분동이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아파트촌 남쪽의 문정동과 장지동은 영농을 위한 비닐 온실의 밀집 지역이며, 문정동 로데오 거리는 1995년 외국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의류 업체들이 자리를 잡으 면서 상권이 형성되었다. 송파구에서는 이 로데오거리를 명소화하기 위해 1997년 4월 17일 종합 계획을 수립하여 상점가 진흥 조합 결성, 노상 주차장 설치, 가로수 정비, 로데오의 날 지정, 거리 축제 실시 및 패션소 등을 개최하였다. 또한 청소년, 어린이, 성인들을 아우르는 의류가 완비되어 로데오 거리는 우리나라 최고의 의류 쇼핑 명소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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