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 2/마르고

목욕을 수영으로 바꾼 옷

남동공단 공장 임대 매매 2020. 4. 17. 16:39





목욕을 수영으로 바꾼 옷..


아주 오래 전 유럽인들은 온몸을 적시는 목욕을 죽음과 동등하게 여겨 수영이나 물놀이를 가급적 피했고, 가끔씩 물에 뛰어들 때면 속옷 차림이거나 알몸이었다.


그러던 것이 1800년대 중반 무렵, 유럽의 의사들이 '마음의 우울함' 을 고치는 데는 수영이 최고라고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람들은 점차 물놀이를 즐기게 되었고 따라서 수영복이 필요하게 되었다.


당시의 수영복은 목까지 올라오는 칼라에 팔꿈치까지 내려오는 소매, 무릎까지 오는 치마나 반바지, 검은 스타킹, 캔버스 슈즈를 모두 갖추어 입는 외출복으로 모방한 형태였고 남성용도 이와 비슷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물에 젖으면 수영하는 사람의 몸무게만큼 나가는 수영복의 무게 때문에 물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1880년 경부터 여성들은 안전한 해수욕을 위해 고안된 '수영 기계' 로 수영을 즐겼다. 일명 '이동 편의 오두막' 이라 불리던 이 기계는 트랩과 탈의실이 달려 있는 자동차로, 얇은 플란넬 가운으로 갈아입은 여성들은 트랩을 통해 바다로 내려갔다. 그녀들의 수영하는 모습은 '정숙 덮개' 라 불리는 차양과 '디퍼(dippers)' 라 불리는 여성 감시인들에 의해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남성들로부터 보호되었다


그 후 1차 세계대전 무렵 몸에 딱 맞는 원피스식 수영복이 확산되었는데, 소매와 무릎 길이의 치마가 달린 형태는 그대로 고수되었다. 오늘 날과 비슷한 수영복을 만든 획기적인 발명가는 미국 오레곤의 포틀랜드에 있는 털 스웨터류를 만드는 덴마크인 얀센이었다. 그는 1915년 포클랜드 보트 팀을 위한 탄력성이 뛰어난 경기용 옷을 만들던 중 신축성이 뛰어난 그 옷에서 수영복의 힌트를 얻었다. 얀센의 수영복은 '목욕을 수영으로 바꾼 옷' 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그 후 1930년부터 수영복은 어깨끈이 가늘고 등을 노출시키는 디자인에 윗도리도 팬티로 나누어진 투피스 형태로 바뀌면서 조금씩 노출 부분이 많아지게 되었다. 1946년 파리의 루이 레아르라는 디자이너는 '비키니' 라는 이름의 대담한 노출의 투피스 수영복을 선보였다. 비키니는 당시 핵폭탄 실험 장소가 되어 화제가 되었던 미국의 작은 섬 이름으로서,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수영복에 섬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1946년 7월 5일, 비키니 환초로 알려진 태평양의 마샬 제도에 핵폭탄이 떨어진 지 나흘 후 레아르의 톱 모델인 미슐린 베르나르디가 역사상 초최의 비키니를 입고 파리의 무대를 행진하자, 수영복은 핵폭탄보다 더 많은 관심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