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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트리스로 일했던 영화 배우들

남동공단 공장 임대 매매 2020. 4. 15. 02:48





웨이트리스로 일했던 영화 배우들


'재클린 버셋' TV 상업 광고에 출연하기 전 그녀는 1962년 런던의 어느 칵테일 바에서 일한 적이 있다.


'존 브론델' 맨해튼 렉싱톤가와 84번가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던 존 브론델은 유명한 10대 희극 배우가 되기 전에 웨이트리스로 일했었다. 한때 코러스 걸을 시도했으나 낙방했다.


'베티 데이비스' 당시 이혼했던 베티 데이비스의 어머니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 그녀의 어머니는 신인 사진 작가였다 - 베티는 아브라함의 커싱 아카데미에 있는 구내 카페테리아에서 웨이트리스를 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다행히 그녀의 학급 친구(남녀 공학이었다)들은 그녀를 깔보지 않았지만, 행여나 그들에게 무시당할까봐 베티는 늘 두려워했었다. 베티 데이비스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내 자존심을 걸고 일했던 첫 입문이라고나 할까요?"


'올리비아 드 하빌런드' 괴팍한 계부 조지 폰테인은 그녀가 영화 배우가 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올리비아는 16세에 집을 나와 사라토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 적이 있다.


'페이 더너웨이' 보스턴 대학 응용미술학과에 등록한 이후 페이 더너웨이는 함께 어울려 다녔던 부잣집 딸들로 구성된 '피피'클럽 회원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웨이트리스로 돈을 벌었는데, 이것은 페이 더너웨이에게 굴욕감과 수치스러움을 가져다주었다.


'프란시스 화머' 가난하게 태어난 금발의 여인 프란시스 화머는 워싱턴 대학 시절 라이너 내셔널 파크에서 노래하는 웨이트리스로 일해 학비를 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 유명세를 가져다준 작품'로타의 이중 생활'과 '가수'등은 그녀의 웨이트리스 시절과 흡사한 내용들을 다룬 영화들이었다.


'존 폰테인' 올리비아 드 하빌런드(그녀의 언니)와 함께 살았으나, 사고 방식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집을 나와 캘리포니아 사라토가에 있는 '런드블래드'에서 하숙 생활을 했다. 그때 그녀는 오전 중에는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오후와 저녁에는 과일을 팔았다.


'로렌 휴톤' 18세 때 남플로리다 대학을 중퇴했던 휴톤은 뉴욕으로 건너가 칵테일 바의 웨이트리스가 되었다. 후에 그 시절을 그녀는 이렇게 회고했다. "겨울이었습니다. 난 배가 고팠고요. 그래서 플레이보이 바니에서 일을 했었는데 정말 여자에겐 치욕스런 직업이었습니다. 단골 손님들은 날 창녀로 취급했답니다."


'그렌다 잭슨' 런던에 있는 영화 학교를 졸업한 후 그렌다 잭슨은 웨이트리스를 포함하여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마델린 칸' 1960년대초 호프스트라 대학교를 장학생으로 다닐 때 그녀는 롱 아일랜드 벨모어라는 독일식 레스토랑에서 노래하는 웨이트리스였다. 마델리능 거기에서 일하려면 풍부한 유머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린 스테프리톤' 2차 세계 대전중 낮에는 맨해튼에 있는 허벌트 벌고프라는 연극 학교를 다니면서 밤에는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메리 스틴버겐' 1972년 알칸사스에 있는 헨드릭스 칼리지를 그만두고 그 녀는 연극 공부를 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 그러나 잭 니콜슨이 '남쪽으로 가는'(1978)이란 영화에 그녀를 주연 배우로 캐스팅하기 전까지, 그녀는 맨해튼 연극 클럽에서보다 '매직 팬'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를 하면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릴리 톰슨' 1960년대 중반 릴리는 맨해튼의 중심지인 49번가와 브로드웨이에 있는 하워드 존슨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어느 날 그녀는 레스토랑에 있었던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소리쳤다.


"여기에 계신 모든 신사 숙녀 여러분! 모두 여기를 주목 해주십시오. 하워드 존슨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 릴리 톰슨이 이제 곧 모습을 나타내겠습니다. 자! 모두 그녀에게 우렁찬 박수를 쳐주십시오."


그날 릴리는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팁을 받았다. 그러나 그날 릴리는 소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제인 위먼' 1930년대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어느 카페테리아로부터 해고를 당했다. 파이를 여섯 조각으로 반듯하게 자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라켈 웰치' 다라어 어부인 제임스 웰치와 1963년 이혼한 이후 그녀는 달라스에 있는 칵테일 바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당장의 생계도 문제였고 어린 두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신디 윌리엄스' 로스앤젤레스 시티 칼리지를 졸업한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다가 잭 니콜슨이 감독한 영화 'Ga-s-s'(1970)와 'Drive He Said'(1971)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그 후 '라베린과 셜리'라는 코미디물에서 셜리 역을 맡음으로써 할리우드의 스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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