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실과 철학적 사실의 차이

과학적 사실과 철학적 사실의 차이
우리가 보는 달은 반지름 1,737km 크기로 알려져 있다. 서울의 남산 높이는 262m로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는 에베레스트산은 8,848m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저마다의 사물에는 크기가 있고 과학은 이를 측정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과학이 측정해서 알려주고 있는 저마다의 크기, 길이, 부피에 대한 측정값들을 아무런 저항없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런데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는데 있어선, 우선적인 한 가지 암묵적 전제와 합의가 먼저 필요하다.
예컨대 우리는 측정단위에 있어 1cm=10mm를 이미 전제한 채로 받아들인다. 만일 이같은 규약적 합의가 없다면 모든 측정값들은 무효화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측정 도구에 표시된 1mm 한 개의 칸과 그 다음 1mm 한 개의 칸은 일치된 합동의 관계로서 전제한 채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삼각형이 궁극적 사실의 세계에서 발견될 수 없는 것처럼 그러한 측정 단위가 정말로 순도 100% 일치 합동의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무시되어도 좋을만한 사소한 오차들이 있을 뿐이다. 이 오차 자체는 불가피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골키퍼 조현우 선수의 신장은 189cm로서 우리는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미세한 사소한 오차들은 거의 신경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러한 측정의 패턴을 극한으로 밀고간다고 하더라도 오차 자체는 불가피한데 그럴 경우 우리는 어떤 균일성(uniformity)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철학에서는 삼각형이 추상적인 것처럼 과학에서 말하는 이러한 측정값도 결국은 균일성을 선택한 값으로 보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그 극한에선 관찰자가 보고싶은 것을 본 기대값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오차를 줄여나간다고 하더라도 그 극한에는 '다양한 차이들'을 균일한 하나로 묶은 어떤 '동일자'를 상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는 관찰자가 어떤 동일자를 선택할 지를 확정지어야만 한다.
따라서 '측정'이라는 패턴은 기본적으로 평균의 오류라는 것을 불가피하게 낳는다.
그런데 예를 들면, 100명 학생의 시험 점수 평균이 50점으로 나온다고 해도 그러나 구성원들 중에는 50점이 없는 경우일 수도 있다.
즉, 실제로는 50점을 받은 학생도 없고, 50점이란 점수도 존재하지 않는 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평균 50점 값은 계속 통용될 것이다.
과학이 수행하는 측정 작업의 가장 밑바닥 기저에는 이처럼 평균화(균일화)라는 추상화의 작업이 관여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실fact이라고 간주하는 것들은 우리 인간의 감각체계에 맞춰져 있는 추상적 형식을 일컫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로 궁극적인 사실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모호한 것이며 오차가 불가피하게 자리하는한 정확한 측정값이란 유예될 수 밖에 없다. 다만 현재의 우리의 삶에 아무런 불편없이 잘 맞는다고 보니까 사실로 통용하며 살고 있는 것뿐이다.
따라서 그것이 궁극적 사실이라는 진리, 또는 정확한 측정이라는 건 어찌보면 달성하기 힘든 영원한 환상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 환상은 항상 우리를 추동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언제나 오류와 오차를 계속 완화하며 줄여나가는 과정이 있을 따름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과학은 이 측정의 단위를 계속적으로 개선나가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 측정의 단위가 기본물리상수로 전환된다면 그 오차는 훨씬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었지만 과학은 '차이'가 아니라 '동일자'를 기본으로서 상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과학의 한계이면서도 과학의 강력한 실용성을 대변해주는 것이기도 하다.